8개월 훈육, “안 돼”가 통하지 않을 때 부모가 해야 할 것

18개월 훈육, 안 돼라는 말! 부모의 인내심과 기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돌잔치를 무사히 마치고 18개월 즈음 되었을 때 본격적인 훈육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때부터는 정말로 말을 안 듣기 시작하죠. 저도 그 시기를 겪으면서 “왜 갑자기 이러지?”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날이 있습니다. 저녁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블록을 집어 던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돼”라고 차분하게 말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더 크게 울면서 한 번 더 던졌습니다. 그 순간 진짜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화가 올라왔습니다. 저 역시 나름의 철칙은 무조건 “안 돼”라고 하지 않기였지만, 현실에서는 그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존중은 무슨, 엄마 열 뻗치게 하려고 태어난 아이인가 싶을 때 육아 서적을 읽어보면 아이도 한 사람의 인격체이니 존중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장난감을 치워달라고 하면 일부러 더 어지르고, 하지 말라는 행동은 꼭 한 번 더 확인하듯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이러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겪다 보니 조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일부러 반항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표현할 방법이 부족해서 행동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래서 장난감을 던질 때도 무작정 “안 돼!”라고 하기보다는, “던지고 싶었구나? 하지만 이렇게 던지는 건 안 되는 거야” 라고 말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몇 번 반복하니까 달라지는 순간이 보이더라고요. 예전에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면, 어느 날은 던지려다가 잠깐 멈칫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짧은 멈춤이 저에게는 꽤 크게 느껴졌습니다. 훈육의 핵심은 부모의 철저한 일관성입니다 훈육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아이보다 제가 더 흔들린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그냥 넘어가...

동생이 생겼을 때, 첫째 질투가 시작되는 순간

둘째가 태어난 뒤, 첫째에게 미안해진 순간들 둘째를 임신하고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가장 먼저 바뀐 건 첫째를 안아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번쩍 들어 올렸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 허리 아파서 안 돼”라는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순간인데도 계속 마음에 걸리고, 괜히 첫째를 더 바라보게 되고. “이러다가 사랑이 반으로 나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엄마, 나는 안 사랑해요?” 그 말을 들은 날 둘째가 태어나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밤에 수유를 하고 있는데, 첫째가 조용히 옆에 와서 서 있더라고요. 그리고 한마디를 했습니다. “엄마, 나는 안 사랑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확 올라오면서, 그날은 수유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첫째를 안아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는 더 심해졌습니다. 첫째가 뭘 해달라고 하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괜히 더 챙겨주고 둘째보다 먼저 신경 쓰려고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이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내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선택 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다시 아기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혼자 잘 먹던 아이가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고 “엄마가 먹여줘”라고 하더라고요. 또 어떤 날은 소파에 누워서 아기처럼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왜 갑자기 이러지?” 싶었죠. 그래서 한 번은 이렇게 말해봤습니다. “너도 동생처럼 아기이고 싶구나.” 그랬더니 잠깐 가만히 있다가, 다시 원래 하던 행동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아이가 이상해진 게 아니라, 지금 상황을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라는 걸요. 공평하게 해주려다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똑같이 하려고 했습니다. 둘째 안아주면 첫째도 안아주고 둘째 챙기면 첫째도 같이 챙기고 그...

우리아이 자존감 높이는 방법, 기질을 바꾸려다 깨달은 것

지난주 놀이터에서 제 아이가 친구와 장난감을 두고 다툴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미끄럼틀 옆 모래놀이 공간에서 작은 트럭 장난감을 두고 실랑이가 있었는데, 저는 솔직히 손이 먼저 나갈까 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잠깐 멈추더니 친구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내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조금만 기다려줄래?"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놀랐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울거나 밀쳤을 상황이었는데, 말로 표현하는 걸 보고 순간 멍해졌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저한테는 꽤 크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우리 아이가 소심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면 자존감이 낮은 건 아닐까 걱정하시는데,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자존감은 성향이 아니라 경험에서 만들어지는 힘 에 더 가까웠습니다. 소심한 게 아니라 신중한 겁니다, 기질과 자존감은 다릅니다 자존감이란 자기 스스로를 가치 있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믿는 신념입니다. 쉽게 말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내면의 확신인데, 이건 다른 사람의 평가와는 별개입니다. 저도 처음엔 아이가 조심성이 많아서 걱정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은 바로 미끄럼틀을 타는데, 우리 아이는 계단 앞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뒤에서 아이들이 기다리는데도 쉽게 올라가지 못하더라고요. 그때는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왜 저렇게 망설일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계속 지켜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무서워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 였습니다. 손으로 난간을 잡아보고, 발을 한 번씩 올려보면서 스스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때부터 생각을 바꿨습니다. “소심한 게 아니라 신중한 거다.” 이렇게 바라보니까 아이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기질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그 기질을 인정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괜찮아”라는 말이 오히려 더 막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두 돌 언어 지연, 단어 몇 개뿐이던 아이가 바뀐 순간

두 돌이 넘었는데 단어 몇 개밖에 못해서, 마음이 매일 찢어졌어요.. 솔직히 저는 첫째가 두 돌이 넘어가는데도 단어를 몇 개밖에 못하자 정말 불안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기다리면 된다고 했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기보다는 더 불안하게 만들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밤이 되면 더 심해졌습니다. 아이가 잠든 뒤 휴대폰을 들고 “24개월 말 늦음”, “언어 지연 기준” 같은 걸 계속 검색했습니다. 비슷한 글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읽고, 괜히 우리 아이가 더 늦은 것 같아 마음이 무너졌던 날도 많았습니다. 언어 발달은 아이마다 편차가 크다지만, 부모 입장에선 그 기다림이 얼마나 긴지 아시나요? 저처럼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직접 겪은 경험과 알게 된 내용을 솔직하게 나눠보려 합니다. 듣는 건 완벽한데 말을 안 했습니다, 수용언어와 표현언어 아이의 언어 발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수용언어는 부모나 타인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고, 표현언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능력입니다. 저희 아이는 수용언어는 정말 잘 됐습니다. “신발 가져와서 현관에 놔둬”라고 하면 바로 움직였고, “이거 쓰레기통에 버리고 와” 같은 말도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표현이었습니다.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하는 대신 제 손을 잡고 끌고 가거나,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했습니다. 가끔 입을 열어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두 단어만 말하고 다시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알아듣는데 왜 말을 안 할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아이가 말하기 전에 먼저 다 알아채고 해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 입장에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36개월,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은 점점 커졌습니다. 특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나 이거 할래”, “같이 하자”라고 말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무 말도...

어린이집 언제 보내야 할까, 직접 겪고 나서 알게 된 기준

나쁜 엄마가 아닐까, 그 죄책감이 오히려 독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정말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침마다 가방을 챙기면서도 손이 몇 번이나 멈췄던 기억이 납니다. 제 커리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를 이렇게 일찍 보내는 게 맞는 건지 계속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특히 첫 등원 전날 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이 옷을 미리 꺼내놓고 가방을 챙겨두면서도, 이게 정말 맞는 선택인가 싶어서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습니다. “조금 더 데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끝까지 놓지 못했거든요. 주변에서는 아직 너무 어리다는 말도 있었고, 빨리 보내야 적응을 잘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고민의 답은 언제 보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내느냐 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이 3세를 권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3세 이후 등원을 권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 3세 이전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 반응이 크고,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 심리적 부담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럼 내가 너무 일찍 보내는 건가?”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거든요. 분리불안이라는 말도 그때 처음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부모와 떨어질 때 느끼는 불안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고 나니, 괜히 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에는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습니다. 등원 첫날, 아이보다 제가 더 흔들렸습니다 첫 등원 날, 어린이집 앞에서 아이 손을 잡고 서 있는데 괜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아이는 상황을 잘 모르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오히려 제가 더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다시 들어가서 데...

새벽 수유하다 울었던 그날, 산후우울증이 시작됐습니다

새벽에 수유하다가 창밖을 보며 엉엉 울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면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요. 새벽에 수유하면서 창밖을 보다가 그냥 펑펑 울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게 거의 매일 반복됐습니다. 불 꺼진 거실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데,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 불빛이 하나씩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그걸 멍하니 보고 있다가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소리를 내서 울면 아이가 깰까 봐, 입을 막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산후우울증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산모들이 겪는 일입니다.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고,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남겨보려고 합니다. 모든 우울감이 산후우울증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게 산후우울증인가?” 싶었습니다. 그냥 내가 약해서 그런 건 아닐까, 원래 다 이 정도는 견디는 건 아닐까 계속 스스로를 의심했습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 기쁜 마음보다 불안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밤에는 계속 깨야 하고, 낮에는 쉬지도 못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반복됐습니다. 특히 힘들었던 건, 울고 싶어도 마음껏 울 수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기는 울면 누군가가 바로 안아주는데, 저는 울면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제일 행복할 때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더 말문이 막혔습니다. 새벽 불빛을 보며 울고 있을 때, 남편이 해준 것들 그 시기에 저는 남편에게 정말 많은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짜증도 많이 냈습니다. 혼자만 계속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제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게 저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제가 겨우 잠들어 있으면 조용히 나가주고 밥을 못 먹을까 봐 간단한 음식이라도 챙겨주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고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제가 아기를 안고 울고 ...

어린이집 전화 한 통, 수족구병이 시작됐습니다

회사에서 전화 한 통, 수족구병이 시작됐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부모들은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요. 저도 그날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괜히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아이 손에 빨간 반점이 보인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알았습니다. “아… 수족구구나.” 이미 원에서 수족구가 돌고 있다는 공지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시작된 일주일은, 아이도 아프고 부모도 같이 버텨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손바닥 몇 개였는데, 하루 만에 입안까지 번졌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손바닥에 작은 빨간 점 몇 개가 올라온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이거 아닌 거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이 입안을 보는데, 혀랑 입천장까지 수포가 퍼져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이가 제대로 먹질 못했습니다.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면 고개를 돌리고, 물도 잘 안 마시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아, 이게 시작이구나’ 싶었습니다. 책에서는 1~4일 급성기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저희 아이는 5일째가 돼서야 겨우 제대로 먹기 시작했고, 수포가 완전히 가라앉는 데는 거의 2주가 걸렸습니다. 발톱이 벗겨지는 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증상이 조금 나아지나 싶었는데, 며칠 뒤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발바닥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발톱까지 들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너무 놀라서 바로 병원에 갔습니다. 괜히 다른 병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됐거든요. 다행히 소아과에서는 수족구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이 병은 “알고 겪는 것”과 “모르고 겪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걸요. 완치확인서...